노병기 목사 회심 이야기
은혜를 구하는 성도들 중에 저의 회심 체험에 대해 물어오는 성도들이 가끔씩 있기에 나중에 출간을 위해 오래 전에 준비해 둔 자서전에서 회심 부분만 발췌하여 올립니다.
1. 자연을 너무나 좋아했던 어린 시절
나는 1974년 고등학교 일 학년 때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주시고 만나주시기 전까지는 거의 종교적인 영향을 받지 못하고 살았다. 교회 간 기억은 초등학교 때 사과를 얻어먹으려고 성탄절 전야 예배에 두어 번 참석한 것 하고, 동네 어린이들을 따라서 성당 미사에 한 번 참석한 것이 전부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비록 정식으로 교회나 성당에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교회나 성당을 생각하면 나름대로 종교적 호기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누가 나를 관심 있게 인도해 주는 사람도 없고 계기도 없고 해서 나는 거의 하나님 없는 세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 특히 자연을 너무나 좋아하였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몇 시간씩 걸어서 근교의 깊은 산이나 강을 찾아 소풍을 다녔다.
지금도 돌이켜 보면 내가 거의 정신을 온통 빼앗길 정도로 자연을 좋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봄이면 인적이 드문 산꼭대기에 올라가 진달래와 할미꽃을 따고, 강에서 잠수하여 조개들을 따던 기억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어릴 때 종교적인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자연의 경이로움을 통하여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심어졌던 것 같다(롬 1:20).
나는 초등학교 시절 교회는 다니지는 아니했지만, 내세에 대한 생각은 가끔 하였다. 만일 하나님께서 계시고 내세가 있다면 나는 천국에 가게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해 보았다. 왜냐하면 어린 나의 눈에 보기에도 그때 이미 마음과 행동이 좋지 못한 아이들이 상당히 많음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중학생이 되면서 나 자신의 마음이 부패함도 느꼈다. 내 속에 죄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고 고통스러워한 적도 있었으나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훨씬 양심적으로 산다고 위로하며 그냥 지나쳐 갔다.
내가 교회에 정식으로 발을 디딘 것은 중 3 여름 때였다. 그런데 불행히도 복음을 전해 듣고 교회에 출석한 것이 아니라 같은 반 친구(후에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지금 법조인으로 잘살고 있음)가 교회 가면 여학생들을 만날 수 있고, 조금 있으면 교회 학생부 수양회가 있으니 경치 좋은 곳에 가서 실컷 재미있게 지낼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하여 당장에 교회에 나갔다. 고등학교 입시를 앞 둔 중 3인데도 수양회에 가서 그때는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
수양회가 끝나자 더는 재미있는 행사가 없을 것 같아 약 두 달 만에 교회 다니는 것을 중지하게 되었다.
당시 내가 다녔던 교회는 아담하고 오래된 예쁜 교회 건물이 있는 교회로 교회 자체에 대한 이미지는 나쁘지 않았으나 그곳에 하나님께서 따로 계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교회에 다니기 전에 막연히 생각한 하나님 이상의 그 무엇도 교회 생활과 수양회를 통해서 배우거나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교회를 나가지 않게 되었다. 계속 다닐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나는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가 외적으로 교회를 다니든 아니 다니든 내게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 느꼈었다.
중학교 그 무렵에 지금도 기억에 생생히 남는 재미있는 경험이 하나 있었다. 아마도 그때가 내가 교회를 출석하고 있었던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한번은 내가 감기에 걸려서 두통이 아주 심하게 된 일이 발생하였다. 이 때 이 모양을 옆에서 지켜보던 두 형들이 “네가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기도하여 나아 보라.” 하며 도전(?)을 하였다. 이때 나는 내 나름대로 마음 한구석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때였다(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유치한 단계이지만).
그래서 나는 그 말을 듣고 그 즉시 형들에게 “그래, 내가 기도할 테니 지켜보라.” 하고 큰 소리를 쳐 놓고는 두 형들이 보는 앞에서 두 무릎을 꿇고 큰소리로 하나님께 나의 심한 두통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아멘” 하고 고개를 들고 일어났더니 그야말로 거짓말같이 두통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이런 체험도 있었지만 나는 교회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교회에 꼭 나가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 그 교회에서 아무런 종교적인 도전이나 감동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교회 다니는 다른 아이들을 보았을 때 세상 아이들과 다른 무엇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교회에 꼭 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2. 하나님의 부르시는 은혜
나는 중학교 때 놀러 다니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유원지에 가서 보트를 타고 놀던가, 롤러스케이트장을 자주 다녔다. 그리고 영화를 너무나 좋아해서 1, 2주에 한 편 정도는 본 것 같다. 나는 영화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 자리에서 두 번을 보고 나올 때가 대부분이었다. 처음 볼 때는 내용에 흠뻑 취하여 보고, 두 번째 볼 때는 첫 번째 제대로 보지 못하고 놓친 장면을 다시 보고, 특히 조연들이나 의상, 소품들을 보았다. ‘벤허’를 보러 갔을 때는 아침 9시경에 들어갔는데 두 번 보고 나오니 오후 5시쯤 되어 있었다. 그리고 바둑을 좋아해서 중 3 여름 방학에는 온통 바둑을 두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도 여전히 바람 쐬며 노는 데 관심이 많았다. 시간이 나면 영화를 보거나 자전거를 타고 공원 같은 곳에 놀러 가는 것을 즐겼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살던 때였다.
이렇게 세상에 흠뻑 취하여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 구원의 손길이 내게 미쳤다. 나는 처음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손길인 줄을 몰랐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것이 하나님의 손길이었음을 너무나도 분명히 느끼고 있다.
그러면 이제부터 내가 하나님을 만나게 된 과정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그때는 고 1 가을이었다.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교련 하기식을 마친 후 같은 반 급우인 정창복이란 친구가 내게 다가오더니만 “병기야, 너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믿느냐?”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주저하지 않고 “물론이지,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 아니하시다면 이 모든 아름답고 질서 있는 세상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느냐?”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창복은 “병기야, 하나님은 그냥 막연히 믿어서는 안 되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 하면서 요한복음 3장 5절 말씀을 소개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거듭나지 못했으니 거듭나야지’ ‘내가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은 분명하니 성령을 받아야지’라는 생각이 당연하게 들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때 창복(지금은 치과 의사로 잘살고 있음)은 자기가 지금 참석하고 있는 작은 기도 모임을 나에게 소개하였다. 그리고 수업 후에 자신이 데려다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데 누가 나를 위해 수고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에 약도만 가르쳐 주면 내가 직접 찾아가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날 오후에 곧장 기도모임에 찾아갔다.
나는 그때부터 기쁜 마음으로 그 기도 모임에 참석하였다. 그 기도 모임은 비록 숫자는 작았지만 아주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모임이었다. 나는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다보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좇았다(눅 9:62).
기도 모임에 참석한 후부터 나는 너무나도 열심히 하나님을 찾았다. 우리의 작은 기도 모임은 화요일과 금요일 오후에는 빌딩에서 모여 기도하였고, 토요일은 짓다가 만 기도원 야산에서 밤새도록 철야 기도를 하였다. 그 기도원은 도시 외곽의 높은 산 중턱에 있었는데, 크고 작은 많은 바위가 있었고, 계곡이 그 가운데 흐르고 있었다. 그 기도원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입구에 내려서 어두운 밤길을 홀로 15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했다.
기쁜 마음으로 기도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아주 쉽게 하나님을 만난 것은 아니었다. 많은 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3. 네가 하나님보다 의로운가?
처음에 나는 하나님께 성령을 달라고 기도는 하면서도 하나님께 굴복하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여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 이유인즉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다면 창세 전에 지옥이 존재하리라는 것도 미리 알고 계셨을 터인데 왜 세상을 창조하셔서 그 수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가게 하시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그 수많은 인간이 영벌의 장소로 가게 된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용납이 되지를 않았다. 일 년도 아니고, 일백 년도 아니고, 일천만 년도 아니고 영원한 지옥에 가야 할 사람이 그토록 많다니! 이러고도 자비로우신 하나님이라 말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폭군이 아니신가? 다른 대부분 사람이 지옥으로 가는데(그것은 통계적으로 봐도 너무나 분명한데) 나 혼자 믿고 천국에 가려고 하다니!
이 문제를 먼저 온전히 해결하지 아니하고 혼자 하나님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인류 동포애 비슷한 것을 강하게 느꼈다. 그래서 밤새도록 기도하고 내려오는 길에 기도 모임을 인도하시는 전도사님과 선생님께 이 문제에 대한 질문을 퍼붓고 많이 다투었다. 그러나 시원한 대답을 못 얻었다.
이 문제를 놓고 오랫동안 고민하며 씨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나를 그 심각한 먹구름에서 빠져나오도록 인도하셨다. 즉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다음과 같은 깨달음이 나에게 다가왔다.
“네가 하나님보다 의로운가?”
“그렇게 질문하는 너는 누구인가? 하나님께 그렇게 말하는 너는 누구냐?”
위와 같은 깨달음이 오고는 나는 하나님 앞에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욥기에도 위와 같은 사상이 나오고, 로마서에도 토기장이의 비유를 들어 하나님의 주권을 설명한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충격에 가까우리만큼 심각히 위의 깨달음이 내 마음속 깊이 파고들었다.
위와 같은 깨달음이 있고 난 뒤 나는 다시는 그와 같은 망령된 생각을 조금이라도 가져 본 적이 없다.
4. 하늘의 별들을 벗 삼아 기도하였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참으로 있는 힘을 다 하였다(마 11:12; 13:44-45).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빌딩 기도처에 모여 기도회를 했으며, 토요일은 기도원이 있는 산에 가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였다.
토요일 기도회 모임을 잠깐 소개하자면, 밤 10시경에 모여 약 한 시간 정도 모여서 합심 기도를 하고 나면 새벽기도회 시간까지 자유기도 시간을 준다. 그러면 다음 날 새벽 기도회로 모일 때까지 밤새도록 쉬지 않고 기도하였다.
나는 자유기도 시간이 주어지면 모였던 장소에서 조금 위쪽으로 아무도 없는 깊숙한 산 중턱에 올라갔다. 왜냐하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홀로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다 드려 기도를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캄캄한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쳐다보며, 또 때로는 멀리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야경을 바라다보며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한겨울 무렵이라 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을 쳐다보고 멀리서 도시의 여러 형형색색의 불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면 마치 성탄 트리를 장식하는 깜빡이 불이 반짝이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한참 기도할 그때는 한겨울이었다. 그러나 나는 추운 줄도 모르고 온 몸에 땀을 줄줄 흘리면서 온 힘을 다해 기도하였다. 나는 외투를 두세 벌씩 입고 산에 올랐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속에서도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였던지 속옷 사이로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을 느낄 정도로 열심히 기도하였다. 그리고 얼마나 부르짖었던지 목이 쉬어서 다음 주 화요일까지는 목이 항상 쉬어 있었다.
새벽 기도회 전에 잠시 눈을 붙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창문의 유리창도 없이 짓다가 만 기도원 바닥이나 야산 차가운 바위 위에 그냥 잤었는데 다 떨어진 이불이나 버려진 가마니를 깔거나 덮고 잤다.
나는 집에 와서도 평일에 수시로 기도를 열심히 하였는데 다른 식구들에게 내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일까 봐 나는 독방을 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두꺼운 겨울 이불을 두 채나 뒤집어쓰고 기도하였던 기억이 난다.
5. 죄가 무엇인지 깨닫다
내가 산에서 기도하기 시작한 지 한두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때에는 보통 10명가량의 학생이 전도사님(당시 약 22세)과 같이 산에서 철야를 계속하고 있었다. 때때로 전도사님이 새로운 학생들의 무리를 데리고 올라오기도 하였다.
한번은 새로 산에 올라온 어떤 학생이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질문을 하였다. 내가 먼저 기도하러 올라온 사람인 줄 알고 무엇인가 듣고자 한 모양이었다.
“기도하면서 깨달은 것이 무엇인가?”
나는 주저하지 않고 시원하게 이렇게 당시 내 마음에 느꼈던 것을 말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기도하면서 죄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동안 기도하기 전에는 죄에 대한 의식이 희미했는데 기도하니까 죄가 무엇인지 확실히 깨달음이 오더라.”
지금 생각해 보니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그때 받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요 16:8)
6. 기나긴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 애통의 긴 시간을 보내며
나는 이처럼 열심히 기도하였으나 약 이삼 개월이 지나도록 내가 하나님을 만났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주신다는 말씀(행 2:37-39)을 붙잡고 죽기 살기로 기도하였는데 나는 하나님의 성령을 받았다는 아무런 확신이 들지를 않았다.
나는 그때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였는가 하면 산에서 개인 기도를 할 때 배가 당기고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주여” 하고 외치고는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배가 아프면 잠시 3초 정도 쉬었다가 다시 “주여” 하고 부르짖어 기도했다(렘 29:12-13). 이것을 힘이 다할 때까지 반복하였다.
회개할 때도 기도 모임에서 여러 사람 틈에서 회개한 것은 내 마음에 시원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안 들어 집에 와서 다시 한번 회개하였으며, 한 번 회개하면 하나님 앞에 조금이라도 찝찝한 것이 남아 있을까 봐 같은 회개를 세 번을 하였다.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찾고 회개하였으나 나는 내가 은혜를 받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를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잊고 계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번은 기도하는 산에서 기도회를 인도하시던 전도사님께 기도회 후 쉬는 시간에 이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며 여쭈어보았다.
“전도사님, 왜 저는 이렇게 열심히 기도했는데 이토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안 주시는 것인가요?”
이때 전도사님은 나에게 재미있는 대답을 해 주셨다.
“병기야, 냄비는 금방 끓다가 금방 식지만, 가마솥은 천천히 끓지만 오래 간다.”
이 말씀을 들으니 그럴듯하였다. 나는 이 말씀에 힘을 얻어 낙심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기도하였다.
내가 은혜를 많이 사모하였지만, 은혜를 빨리 받지 못하는 자신이 처량하고 불쌍하였다.
그래서 한번은 찬송가 343장 “울어도 못하네”를 부르면서 내가 얼마나 못났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이토록 만나주지 않으시는 것인가 하며 눈물을 쏟으며, 손바닥이 아프도록 손뼉을 치며 찬송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울어도 안 되고, 참아도 안 되고, 힘써도 안 되는구나!’ 그러면서 다음의 가사에 마음이 꽂혔다. 그렇다. “믿으면 하겠네. 주 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힘입고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 삶을 얻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보셨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밖에 없네.” 뜨거운 가슴으로 이 찬송을 몇 번이고 찬송했던 기억이 난다.
청교도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긍휼과 사랑을 계시해 주시기 전에 먼저 인간의 비참을 깨닫게 하신다.”라고 했는데, 나는 자신이 벌레만도 못하다는 것을 말 그대로 실감하며 오랫동안 기도하였다(요 16:8).
7.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임을 깨닫게 되다
그리고 그때 내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그것이 가장 큰 죄라는 것을 성령께서 확실하게 깨닫게 해 주셨다(요 16:9).
지금 돌이켜 보면 성령님께서 나를 조금씩 조금씩, 하나씩 하나씩 다루고 계셨던 것이다.
8. 기쁨의 은사
나는 거듭남의 은혜를 구하면서 빨리 만나 주시지 않는 것에는 답답하게 여겼지만, 주님을 찾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나 기뻤다. 세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주님을 찾을 수 있는 것만 해도 너무나 행복했다.
1974년 그때만 하더라도 내가 다니던 학교나 친지, 기타 주변에 믿는 자가 거의 없을 때였다.
나는 빨리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갈급함과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조금도 낙심하거나 우울하지는 않았다.
한번은 산에서 기도회 후 쉬는 시간에 전도사님께 질문을 해 보았다. “전도사님, 나는 아직 성령을 받지도 못한 것 같은데 왜 제 마음이 이렇게 기쁘지요?”
이때 전도사님은 “너를 보니 기쁨의 은사를 받은 것 같구나.” 하며 대답해 주셨다.
성경에 기쁨의 은사가 어떻게 나오는지 알지도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기쁨을 주신 것만은 분명했다(갈 5:22-23; 요 14:27). 그래서 기쁘게 전도사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평소에 기도하는 장소로 갈 때면 보란 듯이 측면이 붉은색으로 칠해진 큰 성경책을 목사님들처럼 가슴에 끼고, 아버지의 검은색 두꺼운 롱코트를 입고 눈발 날리는 도시를 가로질러 걸어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9. 값없이 의롭다 하시는 칭의의 은혜를 간절히 붙잡다
나는 오랫동안 기도하면서 나 자신이 은혜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막연하고 답답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세월이 너무 오래 지나 이 칭의의 복음을 내가 어떻게 듣고 이 말씀을 알게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내가 이 복음의 말씀을 접하자마자, 깨닫자마자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은 채로 하나님께 칭의의 은혜를 주시기를 구하고 즉시 주셨음을 감사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지금까지 나는 칭의의 은혜를 의심해 본 적도 없고,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마음의 확신이 흔들린 적이 한 번도 없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10. 큰 솥을 메고 기도원에 가다
열심히 기도 생활을 하는 중 전도사님께서 개인적으로 도시 바깥에 조금 떨어져 있는 어떤 기도원에 가셔서 기도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때는 한겨울이었다. 나도 기도를 더 간절히 하고 싶던 차에 기도원에 찾아가기로 하였다.
그 기도원은 개인 기도실들이 있었고, 개인적으로 장작을 피워 난방하고 취사도 해야 했다. 나는 냄비나 밥을 할 것이 필요하다고 해서 집에서 사용하던 제법 큰 가마솥을 마대에 넣어 마치 산타클로스 자루처럼 메고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기도원에 갔었다. 기도하러 가는 그 마음은 너무나 상쾌하고 기뻤다.
교외에 있는 그 기도원은 매우 높은 산꼭대기에 있었는데, 차에서 내려서 1시간은 쉬지 않고 걸어 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여 약 이삼일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기도하고 내려왔던 기억이 지금도 추억처럼 머릿속에 남아 있다.
11. 너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가?
그러던 어느 토요일 기도원에서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날도 나는 내가 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힘을 다해 기도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누가복음 14장 26절의 말씀 “사람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는 말씀이 내 심령 속에 다가왔다.
‘내가 나의 목숨까지 미워해 보았는가?’ 이 질문을 기도 중 스스로 깊이 해 보았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쳤다.
'내가 모든 것을 회개하고 모든 것을 버린다고 하였으면서도 바로 기도하고 있는 나 자신, 은혜를 구하고 있는 나 자신은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지금까지 기도해 왔다고 하지만 그것조차 나를 위하여서 해 왔던 것은 아닌가? 내가 정녕 하나님 바로 그분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나 자신이 지옥에 가더라도 기뻐할 것인가?'
위와 같은 생각이 내 마음에 소용돌이쳤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깨달음이 왔다.
'그렇다. 지금까지 내가 기도한다고는 했으나 결국은 나를 위한 기도였고 구원도 나를 위한 구원이었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있는 나 자신은 내가 버리지 못했구나!
내 목숨, 내 삶, 내 시간, 내 건강, 심지어 나 자신 - 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까지 나는 이 모든 것이 나의 것인 줄로만 여기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이 얼마나 배은망덕한 일인가!
결국은 내 생명도 주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의 모든 것의 주인이 나인 줄 알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 줄 알고 나를 위해 살아왔구나!
내가 나를 위해 살았던 옛사람,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지 못했구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는 있었지만 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고 기도해 왔구나!
구원의 기도도 결국은 나 잘살아보겠다고, 나 천국 가겠다고 기도한 것이구나! 거룩하신 주님의 이타적 사랑의 십자가 앞에서조차 주님을 생각하지 못하고, 주님의 거룩하심을 생각하지 못하고, 주님의 이타적 사랑을 생각하지 못하고, 주님의 뜻을 위해 기도하지 못하고 있었구나!
주님, 나의 자아는, 옛사람은 십자가에 완전히 죽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내 속에 사시게 하옵소서!(갈 2:20) 나의 자아를 온전히 십자가에 못 박겠나이다! 제가 죽든지 살든지 저를 통하여 주님의 뜻만 이루게 하옵소서!'
나는 위와 같이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비통한 눈물을 흘렸다. 나는 본래 눈물을 좀처럼 잘 안 흘리는 편이다. 그토록 사랑하던 아버지께서 고등학교 3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을 거의 흘리지 않고 속으로만 삭였었다. 그러나 위의 생각이 얼마나 뼈저리게 느껴 오는지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마구 흘렸다.
그리고 나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이기심에 싸여 있었는가 하는 생각에 더욱 뜨거운 참회의 눈물을 흘렸었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바치는 것에 대해서 손톱만큼도 아쉬움이나 주저함이 없었다.
“내가 누구인가? 바로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닌가! 내 목숨은 또 무엇인가? 다 그 분이 주신 것이 아닌가! 나란 본래 그 분이 그 분을 위해 만드셨으며, 나의 모든 것이 결국은 그 분의 것이 아닌가!”
이런 깨달음이 내 마음속에 주어졌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날이 내가 회심한 날이었다.
12. 오직 예수님의 사랑의 영이 주입되기를 기도하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눈앞에 그리며 기도했다. 예수님 십자가의 사랑이 내 마음속에 불같이 임하시기만을 기도했다.
죄인인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까지 한 그리스도의 이타적 사랑의 불이, 이타적 사랑의 성령이 내 마음속에 불같이 임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오직 그 기도만이 가슴에서 우러나왔다. 힘을 다해,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기도했다.
13.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히다
나는 기도를 시작한 후로는 내가 밟는 땅의 색깔조차 거룩히 변해 감을 수시로 느꼈었다. 기도하러 기도 장소로 가는 중에 내가 걷고 있는 도로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은은한 황금빛으로 가득 찬 것 같은 영적인 느낌을 자주 받았다(사 30:26).
그리고 도로 위의 사람들이 모두 천사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니 모든 이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롬 5:5). '하나님의 영광이 내가 걷는 땅 위에 내렸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기도 생활을 한 지 삼, 사 개월이 지나도록 이것이 성령을 받은 것이구나 하는 강한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를 지도하시던 전도사님께 “저는 왜 성령 받았다는 확신이 없습니까?”하고 여쭈어보았더니 “병기야, 그러면 방언의 은사를 달라고 기도해 보아라.”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토요일 날 산에서 기도하는 중 하나님께 나의 간절한 마음의 뜻을 아뢰었다. 그리고는 며칠이 지났을까? 어느 날 혼자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
그날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내 방에서 기도하는 중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방언이 터져 나왔다. 이로써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심을 보다 확신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나는 쉬지 않고 기도 생활을 계속하였다. 토요일 날 밤새도록 기도하고 새벽에 산에서 내려올 때 아침 태양이 환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내 마음이 그렇게 상쾌하고 기쁠 수가 없었다.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말 4:2),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7-38) 등과 같은 성경 말씀이 조금도 틀림없음을 느꼈다
14. 성령의 부으심을 강하게 체험한 어느 부흥회 철야 기도회
그 후 겨울 방학 무렵에 근교에 있는 어떤 교회에서 학생들을 위한 부흥회가 열렸었다.
서울 총신대학에 재학 중인 전도사님께서 부흥회 강사로 오셨다.
그분은 우리 기도 모임을 인도하던 전도사님과 친한 친구 사이셨다.
그분 자신도 신학생이었으나 은혜 체험이 없이 학교에서 노는 축에 속하였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크게 변화되신 분이셨다.
나는 그 집회를 열심히 참석하여 큰 은혜를 받았다.
그때 있었던 일 중에 지금까지 기억에 생생한 일이 있다.
하루는 집회 중에 강사 전도사님께서 은사에 관해 말씀하신 후 회중을 보시고 “여러분 중에 방언을 받은 사람 중에 방언 통역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라고 하셨다.
그때 내 옆자리에는 산에서 같이 기도하던 친한 한 친구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손을 번쩍 들었다.
우리 둘만 손을 든 모양이었다.
그러자 그 전도사님께서는 일어나서 방언을 한 명씩 해 보라고 하셨다.
그때 모인 학생들이 이백 명은 족히 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는 신나게 한 명씩 방언을 큰소리로 하였다.
우리의 방언을 들은 전도사님께서 한 명씩 통역을 해 주셨다.
나의 방언 통역 내용은 “하나님 은혜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런 내용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더 깊고 상세한 어떤 내용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는데 생각 외로 간단한 내용이어서 약간 실망하였다.
왜냐하면 나는 상당히 오랫동안 유창하게 전도사님이 그만하라고 하실 때까지 상당히 다양하고 많은 내용을 쏟아내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방언의 내용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기뻐하는 내용이라고 하니 그것을 안 것만 해도 기뻤고, 감사했다.
부흥회 마지막 날 저녁 집회 후 개인 자유 철야 기도회가 있었다.
나는 그날 저녁을 잊을 수가 없다.
저녁 집회가 마친 후 약 10시경부터 자유기도 시간이 주어졌는데 다른 아이들은 1시간이 되기 전에 모두 기도를 끝내고 군데군데 흩어져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밤 얼마나 열심히 몰입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는지 두세 시간은 쉬지 않고 계속 기도한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존재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온 마음을 집중하여 기도하였다.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중에 위로부터 기도의 영이 주어지는데 전혀 힘들지 않고 힘을 다해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천사가 와서 힘을 도왔다는 말씀(눅 22:39-44)이 있는데 나도 기도 중에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힘을 주심을 느낄 수 있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고후 1:21-22).
방언으로 기도하고, 혼자 통역도 하고, 시대를 바라다보며 예언도 하였다.
그때 기도한 내용이 지금도 생생하다.
“주님,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땅끝까지 전할 수 있도록 저에서 성령의 사랑과 말씀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온 마음으로 기도를 다 하고 마치니 이미 다른 대부분 학생은 다 자고 있었다.
나는 그날 밤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그날 밤을 기억해야지 하고 날짜를 기록해 두었는데 날짜를 기록한 종이를 그 후 잊어 버렸다.
(이날은 내가 기도를 시작한 지 약 4, 5개월이 되었을 때였다.)
그 후 우리의 작은 기도 모임은 없어지고 말았다.
우리의 기도 모임을 인도하시던 전도사님은 서울 총신대학 재학 중인 전도사님으로 화요일과 금요일에 서울에서 내려오셔서 모임을 인도하셨던 것인데 무슨 일이 있는지 아무런 소식도 없이 모임에 나오시지 않으셨다.
그래도 나는 토요일이 되면 산기도 하던 장소에 나가서 두 주를 기다렸다.
그 첫 번째 토요일은 나와 친하게 기도하던 친구 - 이렇게 둘만 산에 올라왔었다.
두 번째 토요일에 산에 올라온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그러자 나도 토요일에 산에 올라가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15. 성령의 내적 증언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다
그 후로부터는 철저히 혼자가 되어서 신앙생활을 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나는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내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새사람이 되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고후 5:17). 내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분명히 증언해 주셨다(롬 8:16).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길 가는 모든 사람도 천사처럼 보였다. 만물에 하나님의 신성이 나타나 보이는 듯했다. 온 세상이 황금빛으로 빛나 보였다(사 30:26).
성령을 받고 나니 나의 마음속에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 있었다. 마음이 너무나 벅차서 기쁨을 제어하기가 곤란했다.
다음의 성경 말씀이 내게는 100% 사실이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7-3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 14).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3:19).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 9).
하나님을 만난 이 기분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감격이요 기쁨이었다.
나는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하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나는 즉시로 만나는 사람마다 기회가 되는 대로 복음을 전하였다. 그때는 누구를 만나든 입만 열면 구변이 생겨서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입에 계셔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술술 막힘이 없이 말이 잘 나갔다. 어떤 친구는 교회로 인도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어떤 친했던 중학교 동창생 한 명은 내가 그의 집에 찾아가서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하니까 내가 좀 이상해진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을 온통 하나님 생각으로 보냈다. 하나님에 관계된 모든 것이 즐거웠다. 전에는 그토록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고,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지만 하늘의 기쁨을 맛보니 그것들은 결코 즐겁지 못했다. 그렇게 좋아했던 세상의 유흥을 그 후로는 딱 끊어 버렸다.
‘예수님’이라고 부르기만 하여도 내 가슴은 뛰었다. 그야말로 내 가슴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불이 붙은 것 같았다. 그때 예수님께서 내 마음에 성령으로 부으신 뜨거운 사랑은 지금까지 한 번도 식은 적이 없으며 점점 더 깊어져 갔다(롬 5:5). 하나님을 찬양하라!
16. 세례 문답을 받는 날
작은 기도 모임은 해산되었지만 나는 그동안 출석하고 있던 동네에 있는 교회(중학교 때 다닌 바로 그 교회)는 열심히 다녔다.
나는 주일 고등부 예배도 참석하고, 주일 대예배도 자원하여 참석하였다. 대예배 때는 제일 앞자리, 혹은 둘째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마치면 긴 중앙 통로를 나오면서 주위에 계신 나이 드신 여러 성도님에게 먼저 가서 인사드리는 것이 즐거웠다.
나는 성령을 체험하고 난 뒤 빨리 세례를 받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그러나 장로교회는 교회 출석한 지 6개월 후에 학습을, 또 6개월이 지난 후에 세례를 주게 되어 있었던 고로 나는 참고 거의 1년을 기다려야 했다.
또한 나는 세례 희망자는 신약 성경을 한 번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신약 성경을 일독하면서 세례받을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세례 문답을 하는 토요일이 되었다. 여러 사람이 세례를 신청했으므로 조별로 세례 문답을 받게 되었다.
나와 내 조에 편성된 장년을 포함한 여러 성도가 세례 문답을 받으려고 문답실로 들어갔다. 우리는 담임목사님과 대여섯 분 되시는 노(老) 장로님들 앞에서 세례 문답을 받았다.
그때 목사님께서 “세례에는 물세례와 불세례가 있습니다. 물세례는 인간에게 받는 것으로 '내가 앞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하고 서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불세례는 하나님께서 직접 주시는 것으로 성령세례라고 합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불세례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하고 질문하셨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주저하지 않고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서 오른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자 앞에 앉아 계시던 장로님 중에 한 분이 “그렇지. 저 학생은 불세례 받은 것 같아!”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다음날 큰 감격으로 물세례를 받았다. 그때가 1975년 11월 추수감사절이었다.
(이후 내용은 다음 기회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돌이켜 보면 구원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부르시고, 갈급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하시고,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붙잡게 하시고,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시고, 성령님의 부으심을 주신 것 -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주님의 은혜가 넘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을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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